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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묵상

 

이진선 선교사

 

지난 3월 29일 인천의 한 초등학교 여학생을 유괴 살인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회적인 파장이 일어났다. 그것은 16세와 18세의 어린 여학생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미성숙한 나이의 학생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보기에는 계획적이고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슈가 된 것은 폐쇄적이고 자극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결국 일반적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은 사실들은 더욱 사람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우려였다. 누군가를 믿는 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고 불안한 일이 되어버린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사라져간다는 것이었다.

 

이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깨달아 앎’,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라는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분별하여서 해석하고 깨달음으로 알며 타인을 헤아리며 그것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아주 복잡하고도 작업이 바로 누군가를 이해하는 작업일 것이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소홀로 돌아올 것이 뻔하다. 개인주의적 사회 속에서 그것은 스스로에게 관심을 갖는 것보다는 후순위에 내몰릴 가능성이 많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얼마나 냉혹한 사회가 될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시와 묵상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서 왜 ‘이해’라는 단어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시도 묵상도 모두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행위라는 생각 때문이다.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지만 나의 언어로 시를 쓸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지만 진정한 묵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시와 묵상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가 될 것이다.

 

시라는 것은 어떠한 사물나 현상들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사람의 마음에 감정으로 충만케할 수 있는 문학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자신의 삶에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을 깨달아 삶 가운데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해가 없을 때 생길 수 있는 일들을 우리는 말씀 가운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를들면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들 중 10명의 부정적인 평가로 민수기 14장에서 애굽으로 돌아갈 지휘관까지 세우며 계획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려고 이스라엘 민족이 계획 하였을 때 그들에게 내려진 벌은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며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것과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악평한 정탐꾼들이 죽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크게 슬퍼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한 행동은 아침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올라가려 한 것이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 말 것을 특히나 너희 중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에 너희는 대적에게 패할 것이라고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의 말을 무시하고 올라갔고 결국 아말렉인과 산간에 거주하는 가나안인들 에게 패하게 된다. 이 일화를 보면서 생각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부족했나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받은 것은 하나님의 진노였고 그로인해 얻게 된 형벌이었다. 그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했던 이들이었다면 그 순간을 무마시키려고 마치 믿음 있는 이들인 것처럼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로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형벌을 달게 받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의 길로 나아가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어기며 기어코 배반의 길을 걷게 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아도 이러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잡히시는 밤에 모두 뿔뿔히 흩어지기도 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후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온전히 ‘이해’함으로 나아갔지만 말이다. 묵상도 결국은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어려워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한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시’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고등학생 때 시를 쓰면서 작가의 꿈을 키워왔던 이전의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마음에 품었던 생각은

 

‘모든 인간은 시인이다.’

 

라는 것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우리가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나의 언어로 풀어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이해한다면 우리 모두는 시인이 될 수 있다.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팅 선생이 첫 수업에서 좋은 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시론의 서론을 찢어발기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처럼 시인이라는 것이 고고하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겉치레들을 걷어버린다면 우리는 모두가 시인이 될 수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되는 사람은 바로 다윗이다. 그는 왕으로 기름부음 받기 이전에 그저 별볼일 없는 양치기에 지나지 않았다. 양치기의 삶을 보면 양들을 먹이고 쉬게 하는 것 이외에는 별달리 일이 없다. 그 외에 양을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할 일이 없는 직업인 것 같다. 그러한 적막한 순간 속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고 하나님을 묵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눈에 펼쳐진 수많은 자연의 모습들을 바라보며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이처럼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또 다른 묵상이 전제되었을 때 발현이 될 수 있게 된다. 세상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아주 짧은 순간들을 통해서 우리는 묵상이라는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는 것을 조금 더 쉽고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당연히 묵상을 가볍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선행 학습들이 삶 속에서 이어진다면 당연히 삶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이해하며 그것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우리는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삶을 많은 이들이 살아간다면 우리의 사회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결국은 무엇보다도 ‘이해’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사랑도 이에 속할지 모른다. 그것은 편견을 해소시킬 수 있고 차별을 억제할 수 있으며 진정한 위로가 되기도 하며 공감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잠시 삶의 속도전을 멈추고 나의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며 또한 말씀에 침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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