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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기 사도바울은 세계전도에 대한 부르심을 받고 이방지역으로 전도의 여정을 떠났다. 총 세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던 사도바울은 그의 첫번째 여행에서 구브로섬을 거쳐 아시아 남부지역인 비시디아와 밤빌리아 지역의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등의 지역에 전도를 하여 이방신자들을 열매로 얻었다.

그리고 다시 목적을 가지고 두번째 전도여행을 떠났다. 두번째 여행의 목적은 첫번째 여행 기간에 복음을 전한 도시와 신자들을 돌아보는 한가지 목적과 아시아 지역 전역에 복음을 전하려는 또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번째 여행은 그의 계획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아시아 지역을 향하던 그의 계획에 성령이 환상으로 개입하셔서 드로아를 통해 마게도냐 지역에 발을 들이고 아가야 지역에 까지 복음을 전하게 된다. 여러 지역과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사도바울은 두번째 여행에서 1년 6개월이나 되는 시간을 고린도에서 보냈다. 그리고 에베소를 경유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두번째 여행을 마쳤다.

그의 세번째 여행 역시 바로 전의 여행 기간에 복음을 전한 도시와 신자들을 돌아보는 일관성있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더해 바울의 전도사역 전체에서 주목할만한 특별한 한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올 때 경유했던 에베소에서의 사역이 바로 그것이다. 사도바울은 세번째 여행 중 3년이나 되는 시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

사도바울은 그의 전도여행의 모든 여정 중에서 2도시,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유독 많은 기간을 머무르며 사역을 했다.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에베소에서 3년?

 

혹자는 사도바울이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오랜 시간을 소요한 이유는 당시 큰 항구이자 교통의 중심지였던 두 도시에 수많은 우상과 심각한 성적인 타락으로 인해 복음사역을 감당하는데 어려운 싸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사도바울 정도되는 사람이 그런 어려움 때문에 오랜 시간을 소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의 사역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그러한 문제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의 사역을 반대하는 유대주의자들의 방해와 핍박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지역과 도시 중에 데살로니가에 잠시 주목해보자면 사도바울은 그 도시에 단 3주 동안 머무르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단 3주만을 머물렀기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린 교회'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가 그 지역의 신자들에게 쓴 편지인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내용을 보면 책망하거나 교정하는 내용이 거의 없어서 그 교회와 신자들이 얼마나 복음 안에 바로 서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사도바울은 본인이 마음먹고 성령을 의지하여 사역을 할 때 열매를 얻기 위해서 3주의 시간이면 충분했던 사람이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사도바울이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장기간을 머물렀다 이유는 상황의 제약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왜 그리 긴기간동안 머물렀을까...

이는 앞서 언급한 두 도시의 공통된 특성인 큰 항구이자 교통의 중심지라는 점을 주목한다면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 고린도와 에베소는 사도바울의 시대에 지중해 동쪽 끝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즉 무역도시였다. 고린도는 서쪽 아드리아해와 동쪽 에게해를 잇기 위한 최단 육로로서의 지형적 특성을 지녀서 고린도가 속해있는 아가야 지역을 기준으로 하는 양쪽 지역의 무역의 연결점 역할을 했기 때문에 주요 항구도시로써 낙점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에베소는 도시의 지리적 위치가 외부와 잇기에 충분했고 또한 도시 주변 해안선의 형태가 안쪽으로 굽어진 모양을 취하고 있는 이른바 '내항'이었기 때문에 지형 자체가 자연 방파제의 역할을 해 줌으로써 배가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마저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고린도와 에베소 두 도시는 해상무역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시대에 가장 큰 항구도시이자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 점에 감탄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 인사이드를 얻은 것은 그의 두번째 여행 중 고린도에 머물렀을 당시가 될 것이다. 고린도는 그가 복음 사역을 한 다른 도시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다. 무역도시였기에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자기 배에 물건을 가득 싣고 도착해서는 그 물건들을 다 팔아 치우기 전까지는 그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은 상인이기 때문에 최대한 이익을 남겨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물건들을 다 팔아 치웠더라도 다시 그 배에 그 지역의 물건을 가득 싣고 돌아가서 장사를 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변 여러지역에서 그 항구를 통해 들어온 물건을 사려고 모여든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 모두 장사를 해야 했기에 그 도시에 와서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을 머무는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사도바울이 열매를 얻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사도바울은 이러한 점을 착안해서 고린도에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는 에베소에서의 사역이 더욱 더 분명히 뒷받침한다. 사도바울은 두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에베소를 경유한다. 그런데 잠시 경유한 에베소가 그의 세번째 여행의 목적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에베소에서 고린도에서의 기간보다 갑절의 기간을 머물렀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만하다. 그는 다른 도시에서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는데 유대주의자들의 방해가 극심하여 사역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도 물러서지 않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곳에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2년 동안이나 사역을 지속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사도행전 19장 10절은 이렇게 알려준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바울이 선택한 도시 에베소에서 2년 동안의 사역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 아시아는 어떤 곳인가? 사도바울 그의 두번째 전도여행의 목적의 한 축이었던 곳이다. 성령이 허락하지 않아서 드로아를 통해 유럽지역인 마게도냐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사도바울이 방문하지 못한 미완의 선교지가 된 곳이다. 그 미완의 선교지에 대한 과업은 그의 세번째 여행 에베소 사역을 통해 완수되었다.

성령의 도우심과 사도바울의 뛰어난 통찰이 만들어 낸 놀라운 작품이었다.

 

지금도 성령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고 사도바울과 같이 헌신하는 사역자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시대의 고린도, 또는 에베소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의견을 갖고 다양한 곳을 선교지이자 사명지로 고백하겠지만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 시대의 고린도, 에베소는 의심의 여지없이 캠퍼스이다.

특히나 대학 진학률이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 시대, 이 대한민국에서는 더 더욱 그러하다.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면 이 시대 젊은이들의 대다수를 만날 수 있고 얼마나 헌신하고 얼마나 수고하느냐에 따라 그들 중 많은 수를 제자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세상으로, 세상의 각 지역으로, 세상의 모든 직업으로, 세상의 모든 족속으로 파송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배운 사람답게, 똑똑한 사람답게 성령과 동행하는 것은 물론 우리 같은 범인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놀라운 통찰과 전략으로 그의 사역에 대단한 족적과 열매를 남겼다.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아 양육하고 파송하는 1세기 사도바울과 같은 사역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통찰은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너무도 다행인 것은 사도바울은 자신의 통찰과 지혜로 고린도와 에베소에 터를 잡고 여러 해를 머물렀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부르심만으로 시대의 고린도, 시대의 에베소인 캠퍼스에 부름받아서 고귀한 이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캠퍼스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도 모르고 거저 받은 것이다.

 

시대의 상황이 어렵고 사역이 어려워진다고 해도 변함없는 한가지 사실은 캠퍼스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영혼들이 와서 꽤 오랜 기간을 머물다가 떠나는 시대의 중심지라는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상황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해도 여전히 캠퍼스는 캠퍼스다.

 

누군가가 열번을 부정하고, 스스로가 백번을 좌절하더라도 여전히 캠퍼스는 캠퍼스다.

이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은혜이다.

캠퍼스는 언제나 캠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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