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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DFC 공동체(共同體)

임혜영선교사

 

 

방학이 되면 이곳 저곳에서 올라오는 여행 소식들이 SNS를 타고 뜬다. 유명한 관광지와 함께 가볼만한 유적지,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 속에는 해외 가족 여행이나 친구들과의 여행 소식도 간간히 뜬다. 지구촌이 되어가니 가 볼 곳도 많아지고 추억의 사진들도 다양해진다.

 

나의 어릴 적 방학은 대부분 시골 할머니 댁에서의 추억들로 남아있다. 동네 어귀에서부터 마을 어디를 가더라도 모두가 “니 누구 손주고?” 하고 마을 어른들께서 물어보시곤 했고 “뉘댁의 몇째 손주 누구입니다” 대답을 하면 “이쁘다 반갑다” 쓰다듬어 주시던 어르신들의 주름 잡힌 손길과 그 따스한 눈빛은 40여년이 되어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동네 어디에도 과자 사먹을 곳 하나 없었고 사진을 남길 멋진 공간도 빛바랜 사진도 별로 없지만 지금도 그 꼬불꼬불한 논길과 길들, 나지막한 동산도 선명하다.

고향은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는 어찌보면 사람이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나 사업적인 아이템들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상업적 여행의 냄새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사람보다는 촬영장이라는 유명도가 나를 끌고 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있다.

 

얼마 전에 필리핀 룩납의 우리 학생들을 강타한 드라마가 있었다. ‘응답하라 1988’. 80년대 끝자락의 가족, 친구, 이웃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 관계의 갈등, 헤어짐과 궁금증, 오해, 이해와 회복의 이야기들을 다만 몇 편이지만 보면서 가슴이 따스해졌다.

어스름한 등불아래 걸어가는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아침저녁으로 반찬을 들고 다니며 날라대는 모습은 바로 나의 십대와 이십대의 현실이었고, 앞집과 옆집의 엄마 친구들은 나의 또 다른 엄마이기도 했기에 함께 살아가고 함께 울고 웃는 그 스토리들이 곧 나의 이야기였다.

신기한건 이 스토리가 우리 십대들의 가슴까지 활짝 열게 했고 우리들의 소통에 ‘응팔’이라는 공통분모가 많은 공감과 이해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읽어지고 마음을 공감하고 함께 하는 가슴들이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공동체적 스토리가, 스펙과 기능을 추구하는 이 시대의 개인들에게 감동이 되었다는 소식은 더욱 나를 흥분하게 했다. 같은 공간에 살아도 다른 마음의 굶주림을 안고 살수도 있는 것인데 우리의 간격을 좁혀주는 80년대 이야기가 고맙고 그립다.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리면서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겠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 아련함과 그리움이 사라지면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세상 어디라도 갈만한 여행지가 즐비하고 작가들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핸드폰에 담기만 해도 화보 같은 곳들, 음식 맛이 예술인 맛 집들이 쏟아지고 이 수많은 ‘그 곳들’과 ‘그것들’은 마치 우리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증명해주는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 속을 열고 삶의 무게나 마음의 고단함을 함께 하기보다는, 더 근사하고 더 멋진 것을 찾기 위해 돈도 벌고 배우기도 하는 듯한 조급함들이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한다는 것은 시간을 함께 하며 가슴을 열고 서로의 불편한 진실까지 직면하는 것이고, 그 속의 연약함과 감정을 표현하며 그의 실존을 받아내는 것이리라. 나는 우리 DFC공동체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발견한다. 성경에 가득한 그 땀 냄새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도 흡사한 치열하고도 처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한 영혼에 대한 못 다한 헌신으로 몸살을 앓고 일상을 살아내는 아날로그 선교사 공동체 속에서 읽어낸다.

일상(평범함 ordinary)가운데 흘러가는 사랑보다는 무대 위 화려한 조명 아래 이벤트 같은 사랑이 전파를 타면서, 된장찌개같이 구수한 공동체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아직도 그립기만 한 것이 있다. 한 영혼에 대해 ‘그것’ 혹은 이익의 수단 혹은 무엇을 이루기 위한 목적성을 가진 만남이 아니라, ‘너와 나’로 서로를 대하고 그 가운데서도 전체의 부르심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적절한 균형감을 추구하는 그런 건강한 공동체, 그것이 DFC의 색깔임을 선교사들의 삶을 통해 확인한다.

지금 내 앞의 그 한사람을 향해 온 인류를 향해 땀을 쏟듯 전부를 쏟아 붓는, 효율보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소모적인 공동체여서 DFC가 자랑스럽다. 지금 만나게 하신 그 영혼의 인생에 나의 이 수고가 쉼표가 되든지 거쳐 가는 공간이 되든지, 묵묵히 그의 곁에 있어주는 그런 선교사님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바보같이 우직한 공동체여서 더없이 기쁘다. 오늘 거절과 냉대를 받아도 말씀의 회복력 안에서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그런 우직스런 공동체라서 한없이 감사하다.

 

공동체(共同體)의 뜻은 생활(生活)과 운명(運命)을 같이 하는 조직체(組織體). 그런 면에서 우리 공동체는 각자 살고 있는 공간적인 차이는 있지만 살고 있는 형태와 정신이 너무도 닮아 있음을 본다.

하나같이 생명을 낳고 돌보는 어미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각자 선 곳에서 충성을 다하고 있기에, 어쩌면 사도행전의 운명 공동체인 제자들이 파송된 형태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운명처럼 만나 그 은혜의 강을 건너게 되었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그 길을 가리라는 운명적 고백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타문화 복음 전도의 모델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사역이 시작되면 조급해지고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에,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을 증거하는 자로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가족,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으로 어두운데서 불러내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증거하게 하려 하신 목적과 특권에 합당한 공동체로 계속 자라가기를 바란다.

경쟁, 야심, 욕구, 프로그램과 시스템, 효율성과 결과물, 포장을 얼마나 더 그럴듯하게 하는지에 혈안이 되어가는 세상 가운데,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동일화(존 스토트)’를 건강하게 일구어내는 DFC 공동체로 생명력 있게 계속 자라가기를 기대한다!

응답하라 DFC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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