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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의 예수를 따르는가, 가시관의 예수를 따르는가' - 백성균 선교사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청년 하나가 교회 내에서 아주 큰 이슈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알 것이다. 바로 '비와이'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기독교적인 오디션이 아닌 일반 오디션에서 자신의 신앙고백이 그대로 담긴 자작곡으로 우승을 해서 더욱 큰 관심을 모았다. 어느 신문 기사에는 비와이가 요즘 교회로부터 하루에 150여 통의 섭외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얼마 전 참석한 어느 청소년 수련회에서는 강사들마다 비와이 얘기를 했다. 내가 섬기는 중고등부 학생들 중에도 비와이 노래를 외우고 부르는 아이들이 상당수 있다. 그만큼 교회가 욕을 먹는 이 시대에 당당히 믿음을 드러내며 우승한 비와이가 자랑스럽고 가뭄의 단비와 같았을 것이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몇 해 전, CCM 가수 '소향'이 음악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소향은 찬양곡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왕중왕전에서 3위까지 오르며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소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원했다. 유투브에는 "하나님께서 소향에게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셨습니다"는 식의 댓글이 아주 많았다.

이처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와이와 소향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한다. 운동 선수들이 믿음으로 좋은 경기 결과를 얻었다는 동영상이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된다.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이다. 사업을 해서 큰 성공을 거둔 사람,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사람 또는 그의 부모, 유명한 대회에서 우승을 한 사람 등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간증을 한다. 기도제목에도 '이번에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 주십시오'라는 식의 내용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그런 말과 글을 접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과연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나는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당당히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다. 비와이, 소향을 비롯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에 오른 이들의 재능과 노력은 당연히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성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안될 것 같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는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자들이 더 많지 않은가.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위치에 올랐으나 가장 낮은 자리에 스스로 내려가,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길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은 닮으려는 자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계셨으나 그 자리를 포기하시고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셨다.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높은 자리에 오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비와이나 소향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고가 되길 노력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을 목표로 하고, 그것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 더 많은 힘을 가지고 낮은 자리, 작은 자들에게 가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다음은 김지하 시인의 "금관의 예수"라는 글이다.

 

<금관의 예수>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 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

얼어붙은 저 캄캄한 곤욕의 거리

 

어디 있을까 천국은 어디

죽음 저편에 사철 푸른 숲

거기 있을까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 견디겠네

차디찬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은 빛을 잃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우리 구원하실 분

어디 계실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 우리와 함께

주여 우리와 함께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셨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꾸만 예수님께 '황금 면류관'을 씌우고 싶어 한다. 김지하는 이것을 비판하고 싶었다. 우리는 어떤가. 금관의 예수를 따르는가, 가시관의 예수를 따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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